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미군기지가 자리잡은 곳 부평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축소판이다.
우국지사 민영환이 갖고 있던 부평일대의 드넓은 평야들은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 최대 군수공장이었던 부평조병창에서 해방 후 미군의 주둔지 애스캄시티(ASCOM City: Army Service Command City), 1973년 이후부터는 캠프마켓(Camp Market)이란 이름으로 불리며 인천시 한복판 노른자위땅 부평 한가운데 60만㎡가 넘는 공간엔 주한미군 역사상 가장 오래된 미군기지로 변모하며 아직까지 자리잡고 있다.
100년이 넘는 시간동안 우리나라에 있지만 자유롭게 드나들 수 없는 공간이 부평이다.
책 <캠프마켓>은 미군기지 '캠프마켓'이 자리잡고 있는 땅의 과거와 오늘 그리고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인 한만송 '시사인천' 취재부장이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발로 뛰고 땀을 흘려 모은 부평 미군기지 '캠프마켓'과 관련한 역사적 사료들이 총 집합돼 있어 학술적으로도 연구자료로 쓸 만하다.
부평미군기지 '캠프마켓' 전경
책에는 민영환의 땅이 어떻게 친일파인 송병준에게 넘어가게 됐는 지, 왜 하필 부평에 조선 최대 군수공간이 들어서며 힘 없는 조선 민초들이 일제의 전쟁무기들을 만들게 된 까닭들이 고스란히 담겨져있다.
일제는 식민지 조선에서 더 많은 것을 수탈하기 위해 공업화를 추진했고, 그 핵심 지역은 부평이었고 해방을 맞이한 뒤에도 또 다시 미군이라는 점령군에게 그 땅을 병참기지로 허용할 수밖에 없었던 과정들이 설명돼 있다.
이와 함께 지금은 시민의 품으로 돌아오는 것이 확정됐지만 '점령군'이 주둔해 있는 기지를 시민의 품으로 되돌리기 위한 인천지역 시민사회들의 이야기도 조목조목 섬세하게 담겨있다.
미군기지 반환 운동 모습
책에는 2000년에 총 674일간 캠프마켓 옛 정문 앞에서 진행된 '철야농성'에 대한 기록들이 함께 수록돼 있어 그 당시 지역시민사회단체들의 노고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철야농성에 참여했던 이소헌 부평구의원은 그 때에 대해 "여름에는 더위와, 겨울에는 추위와 싸우며 버티었다"며 "여성 참가자들은 화장실 문제로 더 고통스러웠는데 화장실을 사용하려면 농성장을 비우고 부평공원 화장실까지 가야해 여성 농성자들은 더워도 시원한 물을 마음 놓고 마실 수 없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기지 반환을 위해 60만㎡가 넘는 미군기지를 인간 띠로 연결하는 과정도 생생하게 담겨 있고, 기지 반환이 결정된 뒤 일제에 충성한 보답으로 받은 은자금으로 자신을 돌보아주었던 민영환으로부터 이 지역을 빼앗아 차지했던 매국노이자 친일파 송병준의 후손이 제기했던 토지반환소송, 이를 저지하기 위해 인천시민들이 힘을 합쳐 '친일재산특별법'이 제정되도록 투쟁했던 이야기들도 담아져있다.
부평미군기지 관련 자료사진
부평 도심지 60만6615㎡를 차지하고 있는 캠프마켓.
앞으로 2∼3년 후면 미군기지는 평택으로 이전하고 일제 조병창과 미군 주둔지로 사용됐던 땅은 시민의 품으로 되돌아온다.
미군이 사라진 이 땅을 어떻게 활용할 지를 놓고 많은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
질곡의 한국 현대사를 그대로 간직한 곳이기에, 역사성을 가미한 활용 방안 수립도 중요하다. 이 땅은 친일의 배신과 탐욕, 나라 잃은 민족의 설움의 아픔을 그대로 간직한 공간이다. 또한 전쟁과 외국 군대의 주둔, 그리고 자각된 시민들의 저력이 어떻게 세상을 바꿔나갈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을미년인 올해는 우리나라가 외세의 힘을 통해 일제로부터 독립하게 된 지 70년이 되는 해다. 주한미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점령군이 인천 땅을 밟고 자리를 잡은지도 70년째다.
얼마 뒤면 부평미군기지 반환이 시작되지만 이 땅이 어떻게 우리에게 돌아올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대한민국의 근현대사의 상처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캠프마켓과 그 땅에 서린 역사를 우리가 다시 되돌아봐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상우 기자 theexodus@incheonilbo.com
* 한만송 지음, 봉구네책방, 384쪽, 1만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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