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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할만한 시선/주목할 만한 시선, 책

<36> 노동여지도 / 알마

by TheExod 2015. 5. 12.



신간 <노동여지도>는 지난 2014년 3월, 이른바 '삼성의 도시'라 불리는 수원에서부터 2015년 4월 '책의 도시' 파주까지 1년 2개월간 저자 박점규가 전국 노동현장을 발로 뛰며 그린 21세기 노동여지도를 그린 책이다. 그가 내딛은 발걸음마다 하청의 설움과 비정규직의 한숨소리가 가득했다. 한국의 노동여지도는 죽음여지도였으며 가난한 노동자들의 울음이 퍼져있었다. 책에서 저자는 자동차 부품회사와 조선소, 병원, 증권사, 출판사, 공항, 호텔, 패스트푸드점 등 다양한 일터에서 삶을 꾸려가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통해 대한민국 노동현실을 담아냈다. 


▲ 세월호와 판박이인 노동현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 노동지도는 크게 달라졌다.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노동자들은 직장을 잃었고 그 자리는 비정규직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키며 하루하루 불안한 일자리로 변모했다.

법원은 정리해고 사유로 '아직 도래하지 않은 기업 미래의 어려움'까지 걱정하며 노동자들은 '쉽게 쓰고 쉽게 버리는' 일회용품으로 전락시켰다. 2007년 정리해고를 당해 3000일이 넘는 시간동안 복직투쟁을 하고 있는 콜트콜텍 기타노동자들이 만든 밴드 '콜밴'은 이러한 법원의 모습을 자작곡 <서초동 점집>이라는 노래를 통해 풍자하기에 이르렀다. 이제 노동자는 아직 닥치지 않은 위기 앞에서도 해고될 수 있는 셈이다. 지난 15년간 진행된 '노동 유연화'의 실상이다.

'파견법'에 제조업 직접생산공정에 금지돼 있는 파견노동 역시 대한민국 노동현장에서는 사문화된 법률이다. 상시 업무에는 하청업체를 돌려가며 파견하거나 6개월 일하고 잠시 쉬게 했다 다시 파견하기 등 법의 빈틈을 이용한 '변종 사람장사'가 기승을 부렸다. 이 같은 현실이 알려지자 대기업들은 전국의 파견업체들을 통해 생산라인은 도급으로 비생산라인은 파견으로 정비해 현대판 노예인 사람장사를 합법화하려 하고 있고 정부는 노동시장 구조개혁이라는 명분으로 일반 해고마저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을 밝혀 그나마 있던 정규직 일자리마저 위협하고 있다. 


▲ 그래도 희망은 노동운동

저자는 군산의 타타대우상용차에서 성과급 대신에 동생들의 정규직 전환을 선택한 선배들의 모습과 군포의 현대케피코에서 식당과 청소노동자들까지 정규직으로 전환시킨 노동조합, 천안과 아산에서 비정규직 없는 공장을 만든 중소기업 노조들, 이주노동자들의 손을 맞잡은 대구의 노동자들, 부도난 버스회사를 인수해 가장 좋은 일터를 만든 청주의 노동자 자주관리기업, 노숙자 들끓던 병원을 행복한 일터로 만든 파주병원 '강성노조'들을 통해 노동여지도 뒤안길에서 노동의 희망을 찾았다. 

최근에는 현대중공업 정규직노조와 사내하청지회가 함께 사내하청지회 집단 가입 운동에 나서 눈길을 끌고 있다.

정규직노조 정병모 위원장과 사내하청지회 하창민 지회장이 매일 아침 공동 출근 홍보전을 하고 있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활동가들은 공장 곳곳에서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직접 만나 리플릿 반포 등을 하며 가입을 호소하기도 한다. 오는 14일에는 노조 집단 가입을 위한 원·하청 공동 집회를 열 예정인 이들은 현대·기아차 등 여타 다른 대기업 노조와는 다른 모습이다.

현대중공업의 이 같은 움직임은 기존 대기업 노조들이 자신들의 이득만을 챙기고 힘든 일들을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떠넘겼던 것과 다른 모습이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점이 크다. 정부와 재벌들이 만들어놓은 비정규직 하청노동이라는 대한민국 노동현실에서 서로 '함께 살자'는 외침은 희망을 갖게 만들기 때문이다. 

발로 뛰며 우리나라 노동현실의 아픔을 파헤친 저자의 발걸음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땀에 이제 우리가 차별없는 연대로 응답해야 할 때다.  


/김상우 기자 theexodus@incheonilbo.com


/ 박점규 지음, 알마, 390쪽, 1만6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