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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할만한 시선/주목할 만한 시선, 책

<38> 송곳 / 창비

by TheExod 2015. 5. 28.



집회 신고를 하기 위해 사측이 고용한 용역 직원과 노조원들이 달리기 경쟁을 벌이고, 외국계 대형 마트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노동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만화가 있다. 

인터넷 대형 포털사이트인 네이버에서 연재되고 있는 <송곳>이 그것. 

<습지생태보고서>와 <대한민국 원주민>, <100도씨>, <울기엔 좀 애매한> 등 발표하는 작품마다 한국의 사회문제 정면으로 다뤄온 만화가 최규석의 신작인 <송곳>은 외국계 대형마트 '푸르미'에서 벌어지는 부당해고에 맞서 노조를 결성해 싸우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실제 이야기를 다뤘다는 점에서 일종의 르포르타주 만화인 <송곳>은 노동운동가로 40년을 살아온 하종강 성공회대학교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가 "내 강의를 듣는 것보다 <송곳>을 보는 것이 더 낫다"고 말하고 다닐 정도로 날카로운 현실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하 교수가 공인노무사를 상대로 한 강연에서 <송곳>을 읽어보라고 할 정도라면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최규석 작가는 지난 2008년부터 5년 여의 시간동안 꼼꼼히 발로 뛰며 취재를 통해 <송곳>의 밑바탕을 만들었고 지난 2002년 대형마트 까르푸에서 벌어진 해고노동자들의 투쟁을 이끌었던 김경욱 까르푸-이랜드 일반노조 위원장과 하종강 교수를 만나며 줄거리의 뼈대를 세웠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사람들과 잘 어울릴 줄 모르고  원리 원칙을 중시하며 입 바른 소리를 삼킬 줄 몰라 세상과 불화하는 인물 이수인, 그리고 평생 자신의 신념을 실천하며 살아온 노동운동가 구고신이라는 두 인물이다.

최 작가는 "입바른 소리를 삼키지 못하고 세상과 불화하는 이수인의 모습이 자신과 닮기도 했다"며 "나 같은 사람이 노조위원장을 한다는 점도 신기했고, 큰 싸움에서 자기를 지키며 헤쳐나가는 과정도 궁금했다"며 이수인 과장을 주인공으로 점찍은 이유를 설명했다.  

이수인과 함께 또 다른 주인공인 노동운동가 구고신은 그가 만난 70년대 학번 사람들의 성격을 조합한 것이다. 하종강 교수에게서 영감을 얻었지만 그의 착한 얼굴은 작품과 어울리지 않아 여러 활동가들의 모습을 차용해 캐릭터를 구축했다. 

<송곳> 줄거리는 단순한 선악 대결이 아니다. 회사가 악이고, 노동자가 선인 것도 아니고, 선하다고 다 훌륭한 사람도 아니다. 단지 타인을 위해 옳은 일을 죽도록 고생하며 하는 사람들이 주인공이다. 

정권이 바뀐다고 해도 노동 문제는 그대로인 한 우리 삶은 달라지지 않을 텐데 대중문화에는 노동운동이라는 소재가 아예 없어 이를 그려냈다는 최규석 작가. 그의 바람처럼 <송곳>은 최근 영화화, 드라마화 계약까지 마쳐 노동문제를 대중문화에 녹여 알릴 수 있게 됐다. 

'미생'의 뒤를 잇는 인기만화로 등극한 <송곳>은 현재 3부까지 연재된 분량이 3권의 책으로 묶여 나왔다. 총 5부로 내년 봄에 마무리될 이 만화는 이제 한 차례의 파업 만을 남겨놓고 있다. 


 /김상우 기자 theexodus@incheonilbo.com


/ 최규석 글·그림, 창비, 각 1만1000원(총 3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