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향민의 아픔을 달래주는 한 그릇의 평양냉면이 인기를 끌면서 농마국수로 불렸던 음식이 함흥냉면으로 이름이 바뀌었다는 사실. '밥 따로, 국 따로' 나오는 '따로국밥'이 조선시대 양반의 식사법에서 유래됐다는 사실 등 우리가 현재 즐겨먹는 음식들의 유래와 이야기를 자세히 안다면 맛있는 음식을 먹는 즐거움은 배가 될 수 있다.
신간 <음식으로 읽는 한국 생활사>는 음식의 유래와 문화·역사 속 이야기를 중심으로 우리가 흔히 먹는 음식 100가지에 얽힌 이야기가 담겨있어 그동안 우리가 잘 몰랐던 음식의 역사들이 정리돼 있다.
누구나 자신 만의 스토리가 담긴 '솔 푸드(soul food)'가 한두 가지쯤은 있을 것. '어린 시절 즐겨먹던 짜장면', '처음으로 가본 경양식 집에서 먹었던 돈까스' 등 누구나 스토리가 있는 음식이 있고 오랜 만에 맛보는 음식들은 아련한 추억과 감상에 빠져들게 한다.
책은 우리가 즐겨 먹으면서도 미처 몰랐던 음식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삶과 문화·역사를 되돌아보게 한다.
동짓날 팥죽을 먹는 진짜 이유와 잔칫날 국수를 먹는 까닭, 지체 높은 양반가에서 손님 접대 음식으로 물만밥을 내놓거나 임금이 40여 일 가까이 물만밥을 먹었다는 사실, 칡뿌리를 먹게 된 것이 한명회 덕분이라는 것, 불과 50년 전만 해도 돼지고기를 구워 먹지도 않았던 '삼겹살'이 국민 외식메뉴가 된 까닭 등 책에서 소개하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읽어 내려가다 보면 우리가 먹는 음식에 선조들의 삶과 문화, 지혜와 슬기, 낭만과 애환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음식은 역사를 품고 있다.
음식에 얽힌 역사를 알면 음식은 혀끝으로만 느끼던 대상이 아니라 인문학적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본격적인 사유의 대상으로 확장된다.
해장국의 별미 선지해장국. 주당들이 간밤에 마신 술로 쓰라린 속을 달래던 해장국 중 최고의 해장음식으로 꼽히는 선지해장국이 옛날 몽골군의 병참식이었다는 사실이 책을 통해 새로이 드러난다.
여성들은 징그럽다고 꺼리는 선지는 몽골군에겐 꼭 확보해야 할 식재료였다는 사실. 13세기 몽골군이 장거리 이동을 할 때 조달한 양식 중 하나가 말의 피였다. 장거리 이동 중 휴식을 취할 때 몽골 기병은 말의 정맥에 상처를 내어 혈액을 마셨다. 짐승의 피는 병사의 체력을 효율적으로 채워주는 좋은 식량이었다. 몽골군이 아시아와 유럽 일부를 포함한 광활한 지역을 점령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저자는 선지를 꼽는다
'조방낙지 볶음'이란 음식의 유래도 알 수 있다. '조방'은 낙지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조선방직의 줄임말이다.
낙지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조방'이라는 글자가 왜 음식 이름에 붙게 됐을까. 그 이유에는 일제강점기 조선방직 노동자들이 힘든 일과를 끝내고 낙지에 술 한 잔을 걸치며 끼니를 때웠다는 사실이 책에서 밝혀진다. 노동자의 애환이 담겨 있는 음식인 셈이다.
요즘 젊은층이 식후에 커피 한잔을 하며 커피가 국민음료로 자리잡은 것에 대해 저자는 그 옛날 우리 선조들이 식후에 '숭늉'을 빠짐없이 먹었다는 것에서 유래를 찾기도 한다.
실제로 송나라 사신으로 고려를 다녀간 서긍이 고려사람들은 숭늉을 가지고 다니며 마신다고 신기해했던 일화를 보면 요즘 사람들이 텀블러에 커피를 담아 들고 마시는 것처럼 옛날 선조들은 숭늉을 가지고 다니며 마셨던 셈이다.
이처럼 책을 읽다보면 우리가 가볍게 먹고 있던 음식들이 그 옛날 우리 선조들에게 '숨은 사연'들이 있다는 것에 놀라기도 한다.
책과 함께 음식 기행을 떠나면서 나만의 '소울 푸드'를 떠올리는 재미도 쏠쏠하다. 맛있는 음식 사진은 식욕을 불러일으킬지도 모른다. 이 책은 독자들이 음식에 스토리를 입혀 더욱 맛있게 즐길 수 있도록 할 뿐만 아니라 인문학적 상식을 넓히는 데도 도움을 준다.
/김상우 기자 theexodus@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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