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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할만한 시선/주목할 만한 시선, 책

<31> 학교는 시끄러워야 한다 / 양철북

by TheExod 2015. 3. 11.



최근 학생들의 진로희망에서 남자 초등학생을 제외한 초·중·고 학생들 대부분이 가장 희망하는 직업으로 '교사'를 꼽았다. 교사를 선호하는 추세는 오래전부터 있어왔지만 취업시장이 갈수록 어둡고 팍팍해지면서 상대적으로 정년이 보장돼 안정적인 교사가 '성공적 직업'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교사'를 희망하고 선호하는 이들은 많아졌지만 과연 왜 교사를 해야하는 지에 대한 물음에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도 선호도만큼 늘어났을까?! 

우리 주변에서는 아직도 '대학가서 미팅할래, 공장가서 미싱할래'라는 급훈이 버젓이 붙어있는 학교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고, 학생들의 흡연을 단속한다는 명목으로 소변검사와 머리카락을 통해 니코틴 여부를 검사하겠다는 학교들도 상당하다. 교육이라는 미명아래 학생들의 인권은 짓밟히고 직업의 귀천을 가르는 언사들을 서슴치 않게 벌어지고 있다. 

물론 과거에도 학생들에게 모욕적인 언사와 행동을 하는 교사들이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교육적 철학이나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없이 단순히 '직업'으로 교사를 선택하는 이들이 많아진다면 이 같은 사례는 더욱 늘어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세태에서 <학교는 시끄러워야 한다>는 교사라면 누구나 가질 법한 구체적 고민들에 생생한 응답을 건네고 있어 특히 교사 및 교육 종사자들의 공감을 얻을 만한 책이다. 또한 원칙도 품격도 찾기 어려워진 시대에, 자신의 일이 지닌 본질에 대한 끊임없는 긴장감을 가졌던 이의 기록은 우리에게 진정한 인생의 품격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이 책은 다른 교육에세이와는 사뭇 다르다. 번지르르한 성공의 경험만을 늘어놓지도 않았고, 문장 역시 수수하고 담백하다. 그러나 글 속에 담긴 삶의 알맹이는 진솔하고 깊어서, 읽을수록 울림이 느껴지고 그를 더 알고 싶어진다.

1부는 가장 마음에 남는 아이들의 사연 모음, 2부는 학교 행정에 대한 비판과 제언, 3부는 교사로서의 고민과 철학 및 후배 교사들에게 전하는 말을 담아냈다. 


▲35년 평교사가 말하는 학교라는 세계

책 속에는 아이들을 위하는 저자의 마음이 여실히 드러나있다. '어떤 순간에도 아이들의 편이 되자'라는 첫 다짐을 지켜내려 온몸으로 애쓰는 모습이 책 전반에 걸쳐 담겨있다. 그는 동료 교사들에게 우리가 쫓는 것이 과연 '아이들'을 위한 것이 맞는지, 혹여 자신의 출세나 윗사람의 뜻에 의한 것은 아닌지 묻기도 한다.

총 3부로 이뤄진 책 중 1부에 기록돼 있는 아이들의 사연은 그가 평교사로 재직하는 35년 동안 만났던 아이들과의 사연 중 마음에 남은 것들이 엮여있다. 어른들이 만든 불완전한 세상 속에서 가족, 경제적 문제, 성적, 친구 등의 이유로 청소년들이 아파하고 힘겹게 성장하는 내용들을 그들의 목소리를 빌어 기록했다. 아이들의 사연이 아프면서도 진솔해서, 쉽게 책을 놓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다.

저자가 학교 현장에서 아이들을 이해하려하는 노력, 아이들의 편에서 학생들을 온전한 하나의 인격체로 대우하려 노력하고 실천하는 모습, 서로 소통하고 애틋해하는 내용들이 담겨있다. 그가 아이들의 생명력과 웅성거림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교사임을, 아이들의 내일을 진정으로 염려하고 응원하는 큰 어른임이 절절히 느껴진다.

2부에서는 학교 행정과 교직사회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3부는 교사로서의 철학 및 후배 교사에게 하고픈 말을 모아놓았다.


▲녹록치 않은 현실과 이상의 괴리.

오늘날 공교육의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저자는 책을 통해 교사로 살며 느끼는 매일의 희로애락과, 내부에 있는 이만이 볼 수 있는 모습들을 있는 그대로 적었다. 아이들은 날로 치열해지는 경쟁 속에서 지쳐 가고, 교사들은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고 시스템을 따라가느라 숨 쉴 틈이 없다. 그는 무엇보다 학교를 이루는 본질인 '사람'에 대한 이해와 배려는 부족하고, 과시를 위한 실적 쌓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며 탄식한다. 가르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고, 누군가 조언을 구해 왔을 때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어려울 때도 있다고, 때론 학교에 정말 희망이 있는 것인지 암담하기도 하다고 털어놓기도 한다.

그는 책에서 "무슨 놈의 벌점 조항은 그렇게 많은지. 교장, 교감도 교사들에게 벌점을 주라고 독려하고 있다. 그런 속에 아이들이 있고 내가 있다"며 "나와 아이들은 이곳에서 큰 공장의 톱니바퀴처럼 굴러갈 뿐 교사의 향기, 아이들의 독창성을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로 교육현장의 안타까움을 토로하기도 한다. 하지만 교육현장에 대한 그의 쓴소리는 자신의 감정이나 논리를 표현하는 일과는 거리가 멀다. 그의 눈은 철저히 '아이들을 위한 가치'에 맞춰져 있다. 

저자는 무엇보다 '차별하지 않는' 교사가 되고 싶었다고 한다. 공부 잘하는 아이, 공부 못하는 아이, 말썽 피우는 아이를 구분하지 않으려 애쓰는 흔적이 곳곳에 보인다. 또한 함께 청소하기와 같은 사소한 일에서부터 법원에 가야 하는 일처럼 어려운 일, 또 남 앞에 나서는 일처럼 어깨에 힘이 들어갈 만한 일도 모두 동일한 무게로 다룬다. 

이 책은 때론 희망이 없어 보이는 학교이지만 아이들과 지내느라 몸과 마음을 다해 애쓰고 있을 후배 교사들에게 전하는 하나의 일기장이다. 화려한 어휘와 사례를 들며 "교육은 무엇이다"는 말로 자신의 철학을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그가 매일 또박또박 적어 내려간 흔적 속에서 살아 있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교직사회의 솔직한 속내를 들여다볼 수 있어 책을 읽는 이에게 우리 사회의 공교육이 과연 이대로 좋은 지를 생각하게 한다.  

/김상우 기자 theexodus@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