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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할만한 시선/주목할 만한 시선, 책

<15> 황해문화 통권 85호 겨울호 / 새얼문화재단

by TheExod 2014. 12. 9.



황해문화 통권 85호의 특집은 정치다. 

물론 작은 의미의 정치, 대한민국의 대의정치에 관해서다. 

세월호 침몰사건이 일어난 이후, 잠시 정신을 차렸던 '국민들'은 감히 '국가'에 책임을 묻고 나아가 '국가'를 처벌하고 변혁해야 한다고까지 주장하고 있다. 

정치공학적 논리를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대개 이런 국면에서 가장 큰 정치적 혜택을 보는 쪽은 당연히 '야당'이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이 국면에서 야당이 국민적 여망을 등에 업고 뭔가 강력하고 확실한 변화를 이끌어내기를 희망했고 심지어 '묻지 마 여당지지자'들조차 그런 정황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그 기대는 현재의 보수 야당에게는 지나치게 과분한 것이었다. 세월호 국면에서 치러진 지방자치단체 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이라는, 새 정치도, 민주주의도, 연합도 못하는 이 보수 야당은 그 어떤 인상적인 장면도 보여주지 못하고 제 발로 심판 주체의 자리에서 내려와 심판 대상의 자리로 찾아들어갔다. 게다가 그들이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의 편에 선답시고 벌였던 일련의 정치놀음은 어수룩하다 못해 차라리 가련할 지경이었다. 그들은 희생자들의 편에 서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정부여당과 희생자가족들 사이를 하릴없이 왕복하기만 하다가 제풀에 지쳐 나가떨어지고 말았을 뿐이다. 이미 국가의 한 부분인 그들이 국가를 넘어서야만 가능한 국가 심판 행위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겠지만 그들은 그러한 시늉조차 하지 않았다. 큰 기대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60년 '정통야당'의 이 같은 전락은 어쨌든 실망스럽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결국 이번 사건의 진행 과정(아직 아홉 명의 실종자가 남아 있는 세월호 침몰사건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을 통해 그 본질이 가장 잘 드러난 것은 집권 새누리당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야당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보수 야당은 설사 어떻게 해서 다시 집권을 하게 된다고 해도 결코 이 엉터리 국가를 바꾸지 못한다. 한국정치는 바야흐로 극우보수와 온건보수의 간헐적 회전문 시스템 속으로 돌입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한국 제도정치 시스템 속에서의 야당의 존재를 묻기로 했다. 어떤 기대가 남아서가 아니다. 이 특집은 어쩌면 이제 더이상 그들에게 어떤 기대도 남겨두지 않기 위한 논리적, 정서적 청산작업일지도 모른다. 


▲다시 한국 정치의 길을 묻다

특집 '다시 한국 정치의 길을 묻다'에는 다섯 편의 글이 실린다. 

그 중 세 편에서는 보수야당, 혹은 자유주의 정치세력이라고 불리는, 그리고 지금은 '새정치민주연합'이라는 당명을 지니고 있는 정치세력이 다루어지고, 다른 한 편에서는 기타 군소 좌파정치세력에 대한 진단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대의정치의 프레임을 넘어서는 대중의 직접 정치의 가능성을 살펴본다. 

황병주(숙명여대 강사)의 「한국 정치의 제도화와 보수 양당체제의 성립」은 다소 새삼스러운 감이 있지만 해방 직후에서 1950년대에 이르는 한국 정당정치의 제도화 과정을 다시 살펴보면서 크게 한국민주당(한민당, 1948)→민주국민당(1950)→민주당(1955)→신민당(1967~1979)으로 이어지는 한국 보수 야당(물론 4·19 직후 민주당이 잠시 여당이었던 적이 있었지만)의 역사를 재구성하고 있는 글이다. 

여기서는 태생적으로 친일지주계급을 기반으로 한 보수 야당 세력이 반공주의 헤게모니 전략과 자유주의라는 다소 모순적인 두 축을 중심으로 하여 어떻게 자유당에서 공화당으로 이어지는 집권여당 세력과 길항해왔으며 그 결과 강력한 보수 양당체제를 구축하게 되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이 글은 이러한 강력한 보수 양당체제의 수립과 기득권화야말로 한국사회에서 다른 계급계층의 정치활동을 제약해오고 민중의 이익을 정치화하지 못하게 만들어온 가장 큰 원인임을 밝히고 있다.

강병익(한신대 학술원 연구교수)의 「비판적 자유주의 정치세력의 등장과 헤게모니의 변화」는 위와 같은 보수 야당 세력의 내부에서 자유주의적인 지향이 상대적으로 선명하게 등장하기 시작한 1971년 대통령 선거 국면에서부터 최근 노무현 정권에 이르기까지 군사독재체제에 대한 저항과 민주화라는 큰 흐름 속에서 보수 야당이 걸어온 길, 즉 군부독재와 수출주도 발전전략에 대한 저항축으로서의 역사적 기능, 지역주의 연합기획을 퉁한 집권전략의 수립 및 성공과 그 한계, 그리고 신자유주의 시스템에의 적극적 영합과 그로 인한 상대적 진보성의 상실 등을 되짚어보고 있다.

이광일(성균관대 강사)의 「자유주의 정치세력의 재집권은 가능한가」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 탄생의 원인과 과정을 면밀히 되돌아보고 그 기간 동안 이들의 자유주의가 어떻게 신자유주의 속에 포섭되어갔고 그 결과 국민대중의 기대로부터 멀어져가게 되었는가를 보여주고 있으며, 결국 한국 보수  양당체제의 한 축을 담당해 온 자유주의 정치세력은 신자유주의로의 전향, 그로 인한 의미 있는 대안 제시의 불가능, '더 많은 민주주의' 에 대한 기획 부재, 순응주의와 리더십 부재 등을 이유로 향후 재집권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비관적 예측을 내놓는다. 또한 다만 지역주의적 선거공학을 통한 일말의 집권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선 신자유주의와 최소민주주의의 양립은 이미 집권 새누리당에서도 구현되고 있으며, 이들 자유주의 정치세력 내부에서도 개혁적 자유주의자의 비율은 20퍼센트를 넘지 못한다는 점에서 그 성공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본다. 다만 전국 득표율을 기준으로 하는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가 구현될 수 있다면 이러한 보수 양당체제에 의미 있는 균열이 일어날 수 있다는 예측으로 결론을 맺고 있다.

한편 장석준(노동당 부대표)의 「한국 진보정당운동의 숙명과 도전」은 이러한 강고한 보수 양당체제의 틈바구니에서 독자적인 정치세력화를 도모하고 있는 좌파 진보정당의 상황을 점검하는 글이다. 이 글은 오랜 냉전체제 속에서 비합법화되어 왔던 진보적 정치세력이 1980년대 후반 노동자 대투쟁을 계기로 합볍공간을 확보해나간 결과 2000년 민주노동당이 창당되었으나 신자유주의의 파고로 인해 정규직 대기업 노동자들만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으로 위축되고, 이후 진보신당, 통합진보당, 정의당, 노동당 등으로 이합집산하면서 내적으로는 친북적 성향과 보수 야당과의 민주대연합론으로 대변되는 현실주의적 체제안주적 경향, 그리고 외적으로는 여전히 강고한 냉전적 사회분위기 등에 의해 이들에게 부과된 진보적 전망의 정치적 구현이라는 역사적 과제와 점점 멀어지게 된 저간의 곤혹스러운 사정들을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김정한(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의 「한국사회의 대중들과 새로운 정치주체의 형성」에서는 세월호 참사를 기점으로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정치적 양극화가 해결될 가능성이 열렸지만 결국 특별법의 온전한 제정이 물건너감으로써 그 가능성이 다시 봉쇄되었다고 판단하면서 4·19, 5·18, 6월항쟁 등 과거 역사의 물길을 바꿔왔던 대중들의 직접적 정치행동이 지금은 올바른 정치적 대표세력의 부재로 인해 표류할 수밖에 없다고 진단하고 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 이후 국가개조를 요구하는 대중의 흐름이 한편으로는 국가주의로 귀결될 가능성도 있고 국가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의 상실로 허무주의화할 가능성이 크지만 새로운 세대의 등장과 더불어 이러한 난관이 극복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조심스러운 진단으로 끝을 맺는다.


▲인천아시안게임부터 대한민국 국무총리까지

특집 외에도 눈길을 끄는 글들이 많다. 진태원(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의 비평글 「'비판적 사유의 미국화'란 무엇인가」는 지난 봄호(통권 82호)에 실렸던 「좌파 메시아주의라는 이름의 욕망: 알랭 바디우, 슬라보이 지제크, 조르조 아감벤」의 후속편 격으로, 발표 이후 많은 독자와 연구자들 사이에서 논쟁되어왔던 '비판적 사유의 미국화' 문제를 더욱 발전시켜 상세하게 논의하고 있다. 진태원은 '비판적 사유의 미국화'라는 문제가 20여 년 전 국내에 포스트 담론이 소개될 무렵 충분히 제기된 문제라는 지적에 대해 자신의 논점을 잘못 이해한 결과라고 보고, 20여 년 전 논의되었던 문제와 다른 지점에 있는 것임을 짚는다. 그리고 한국의 인문사회과학, 특히 비판적 인문사회과학의 미국 의존도가 점점 더 증가하고 있음을 지적하며, 미국에서 변용되고 재창조된 담론들을 즉각 수입하여 편리한 자원으로 이용하려는 한국 인문학의 현실을 드러내보인다. 정용철(서강대 교수)은 「인천아시안게임에 대한 정신병리학적 고찰―넘버 3의 비애」에서 인천아시안게임을 치르면서 조직위가 보여준 미흡한 개막식과 경기 운영과정 등의 이유를 인천이라는 도시 자체가 가진 결핍과 보상의 병리학적 심리에서 찾는다. 김윤철(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은 「대한민국 국무총리의 역사적 궤적」에서 한국 정치권이 분권형 대통령제를 논하면서 국무총리의 위상과 역할을 재조명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한민국 국무총리가 실제 어떠한 역사적 궤적을 그려왔는지를 시기별, 정권별 역대 국무총리들의 면면을 살피면서 그 특징들을 짚어본다. 이를 통해 한국 정치계에 '책임총리제'의 등장이 가능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다.

권혁태(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가 연재하고 있는 '잃어버린 사람을 찾아서' 4편 「'일본인'을 자처했던 '조선인' 송두회」에서는 외국인등록증을 불태우고 일본국적확인소송을 벌였던 재일조선인 송두회의 흔적을 찾아보며, 그가 '밀항자 단속'에 열을 올리는 전후 일본의 겁박에 자신의 삶을 대치시킴으로써 한 사회가 단일의 '종(種)'이나 문화가 아니라 '밀항자', '이주자' 같은 '틈입자'들에 의해 성립되어 있고, 이를 통해 국가가 자명하지 않음을 보여주려 했음을 밝혀낸다. 

이밖에도 황해문화에는 사진작가 이상엽의 포토에세이 「4?16, 그날 이후」를 비롯하여 박형준, 복효근, 전윤호, 문동만, 박일환, 한경용 시인의 신작시와 소설가 윤동수, 김금희의 신작소설 등이 돋보인다.  

/김상우 기자 theexodus@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