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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할 만한 시선, 영화

욕망과 이성, 선택 기로에 놓인 남자의 이야기 영화 <화장>

by TheExod 2015. 3. 20.



4년의 투병 끝에 아내가 죽었다. 암으로 죽은 아내 장례식장, 딸의 오열 속에서도 젊은 부하 여직원에게 눈길이 간다. 

병든 아내의 육신과 싱싱한 추은주의 젊음, 두 여자 사이에 놓인 한 남자의 욕망과 번민을 통해 한 중년 남성의 솔직한 민낯을 드러낸다. 끊임없이 본능과 이성의 갈등이 부딪치고 50대 중년의 남자는 괴로워한다. 

영화 <화장>은 죽어가는 아내와 젊은 여자 사이에서 방황하고 갈망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임권택 감독의 102번째 영화다. ‘임권택, 김훈, 안성기’ 세 거장의 만남이라는 사실만으로도 화제가 됐던 영화이기도 하다. 



특히 지난 1964년 <십자매선생>을 시작으로 2002년 <취화선>에 이르기까지 임 감독과 총 7편의 작품으로 여러 가면을 썼던 안성기는 12년 만에 <화장>을 통해 다시금 감독과 재회했다. 내공으로 다져진 그의 깊이 있는 연기력은 죽음과 젊음 사이에서 갈등하는 중년 남성의 연민과 고뇌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영화는 아내(김호정 분)의 죽음을 맞이한 오상무(안성기)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상무는 화장품 회사의 중역이자 성실한 가장으로 회사와 가정 그 어느 쪽도 놓치지 않으려 노력하는 우리 시대 전형적인 아버지의 모습을 하고 있다. 

갑작스레 닫히려던 엘리베이터 문을 잡으며 시작된 추은주(김규리)와 오상무의 첫 만남. 가정에서도 회사에서도 완벽한 아버지와 상사의 모습이던 그에게 새로 경력직으로 입사한 추은주(김규리)가 등장했다. 빈틈없어 보이는 오상무였지만 그녀의 등장에 설레임을 느낀다. 

이후 그는 아내의 병실에서 잠을 자거나 홀로 술을 마실 때, 심지어 아내와의 잠자리에서도 추은주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아내의 죽음이 진행 중이라는 극도의 정신적 스트레스 상황이면서도 매력적인 다른 여성에게 눈길이 가는 모습을 과장되지도, 너무 밋밋하지도 않게 표현한 안성기의 오상무는 수많은 남성 관객들에게 '내가 저런 상황이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상상을 불러 일으킨다.

죽음을 앞둔 아내에게 헌신적인 간병을 하는 이성적인 모습에서부터 성적매력이 충만한 다른 여성에게 눈길이 가는 본능적인 모습까지 인간 내면의 양면적 모습을 모두 드러내지만 이성과 본능의 갈등이 아닌 공존의 모습이 그려진 오상무는 비단 남녀관계의 상황이 아니라 수많은 삶의 순간순간 속 이성과 본능의 싸움들을 대변하는 듯 하다.

오상무가 가진 내면 속 복잡한 감정은 장례식장에서 집약적으로 드러난다. 아내의 죽음을 전해들은 딸 아이의 오열 속에서도 추은주에게 눈길이 쏠리는 그의 모습, 부인의 영정사진, 상중에도 일하는 오상무의 모습이 차례로 카메라에 담기며 영화는 자연스레 오상무의 감정을 따라가게 만든다. 



'화장'은 이처럼 오상무 역을 맡은 안성기의 감정선이 극의 핵심 주제로 펼쳐진다. 안성기는 중년 남성의 욕망과 고뇌, 절망과 헌신 등을 담담한 듯 현실감있게 표현했다. 관록이 느껴지는 그의 연기에 관객은 몰입하고 감정축은 흔들리지 않는다. 

아내 역을 맡은 김호정은 암투병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죽음 앞에선 환자의 모습을 처절하게 그려내 보는 이들의 마음을 자극한다. 김규리 역시 추은주라는 여인의 외적 미모와 당당한 여성상을 표현, 팜므파탈의 정석을 보여주며 관객들을 유혹한다. 

극 후반 오상무의 행동에는 많은 의문이 남기도 한다. 얽히고 설킨 그의 감정을 따라가며 해석이 다양할 듯 하다. 

지난 2004년 제 28회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김훈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는 '화장(化粧 : 화장품 등을 써서 곱게 꾸밈)'과 '화장(火葬 : 시체를 불에 살라 장사 지냄)'의 중의적 의미를 지녔다. 2004년 제28회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김훈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오는 4월 9일 개봉 예정이다.  

/김상우 기자 theexodus@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