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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할 만한 시선, 영화

당신이 잊고 있던 그들을 만나다. <그라운드의 이방인>

by TheExod 2015. 3. 6.



전대미문의 한국프로야구 30승 투수 장명부, 최초의 한국시리즈 4승 투수에 도전했던 김일융, 2000년대 SK왕조를 이끌었던 김성근. 이들의 공통점은 재일동포 야구선수라는 점이다. 1982년 출범한 한국프로야구가 누적관중 1억명, 연간 관중 700만명의 국민스포츠로 자리잡는 데에는 한국야구가 다시 꽃 필 수 있도록 도움을 줬던 재일동포들이 뒤에 있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영화 '그라운드의 이방인'은 우리가 잊고 있던 그들, '재일동포' 야구선수들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다시 말하는 작품이다. 



한국전쟁이 끝난 지 얼마되지 않은 1956년부터 IMF 경제 위기를 겪기 바로 전인 1997년까지 해마다 여름이면 재일동포 학생야구단은 한국을 방문, 친선경기를 가졌다. 1971년부터 시작한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도 참가한 이들은 준우승 3회라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42년간 현해탄을 건너 야구를 했던 재일동포 학생들은 모두 620명. 이들을 우린 잊고 있었다. 영화는 재일동포 학생야구단 중 1982년도 봉황대기에 출전했던 이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1982년. 전두환 정부의 3S(Sports, Sex, Screen) 정책의 일환으로 한국 프로야구가 출범했고 당시 봉황대기 고교야구 결승전은 이를 기념해 잠실야구장에서 개최됐다. 이후 고교야구의 인기는 쇠퇴하기 시작, 잠실야구장에서의 경기는 1982년 광주일고와 재일동포 야구팀의 결승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쪽바리 같은 한국사람. 일본에서도 차별받지 않습니까. 한국에서도 역시." 1982년 당시 좌익수로 모국땅을 밟았던 김근씨는 한국과 일본 양쪽에서 모두 핍박을 받았던 당시 '재일동포'의 존재에 대해 회상하는 장면을 통해 식민지배와 분단, 여러 핍박을 타국에서 겪으며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고 살아야했던 재일동포들의 고민을 여과없이 드러냈다. 



실제로 일본사회에서 이른바 자이니치(在日)로 불리며 '조선인'이라면 갖은 핍박과 멸시를 받고 있는 이들이 무엇때문에 현해탄을 건넜을까. 8월에 열리는 봉황대기 고교야구대회에 참가할 경우 자칫 자신이 '자이니치'라는 것이 학교 친구들에게 알려질 수 있었음에도 그들은 모국땅에서 혼신을 다해 공을 던졌다. 1시간40분이 약간 넘는 상영시간동안 '왜?'라는 질문은 머릿 속을 떠나지 않았다.



학생야구팀으로 모국에서 열린 경기에 참가했던 그들 중 어떤 이들에게는 일본에서도 한국인임을 드러내고 사는 계기가 되기도 했지만, 또 다른 어떤 이들에게는 일본으로 돌아가자마자 귀화 절차를 밟게 하기도 했다. 

김명준 감독은 "한국야구의 기술적·이론적 발전에 도움이 됐던 재일동포 학생야구인들이 한국야구사에서 자칫 영영 잊혀질 수도 있는 만큼 이를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누군가 나서야 하지 않겠냐는 말을 듣고 작업을 시작했다"며 "재일동포들이 일본과 한국 양쪽에서 어떻게 소외받고 살아왔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그 말을 듣고 묘한 책임감을 느꼈다"는 말로 연출의도를 밝히기도 했다.



32년만에 고국의 마운드에 다시 선 야구소년들의 이야기를 다룬 '그라운드의 이방인'. 올해 34년째를 맞는 한국 프로야구가 잊어선 안될, 오롯이 기억해야 하는 역사이자 우리 마주한 재일동포의 현실을 우리에게 전한다. 


/김상우 기자 theexodus@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