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 신고를 하기 위해 사측이 고용한 용역 직원과 노조원들이 달리기 경쟁을 벌이고, 외국계 대형 마트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노동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만화가 있다.
인터넷 대형 포털사이트인 네이버에서 연재되고 있는 <송곳>이 그것.
<습지생태보고서>와 <대한민국 원주민>, <100도씨>, <울기엔 좀 애매한> 등 발표하는 작품마다 한국의 사회문제 정면으로 다뤄온 만화가 최규석의 신작인 <송곳>은 외국계 대형마트 '푸르미'에서 벌어지는 부당해고에 맞서 노조를 결성해 싸우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실제 이야기를 다뤘다는 점에서 일종의 르포르타주 만화인 <송곳>은 노동운동가로 40년을 살아온 하종강 성공회대학교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가 "내 강의를 듣는 것보다 <송곳>을 보는 것이 더 낫다"고 말하고 다닐 정도로 날카로운 현실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하 교수가 공인노무사를 상대로 한 강연에서 <송곳>을 읽어보라고 할 정도라면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최규석 작가는 지난 2008년부터 5년 여의 시간동안 꼼꼼히 발로 뛰며 취재를 통해 <송곳>의 밑바탕을 만들었고 지난 2002년 대형마트 까르푸에서 벌어진 해고노동자들의 투쟁을 이끌었던 김경욱 까르푸-이랜드 일반노조 위원장과 하종강 교수를 만나며 줄거리의 뼈대를 세웠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사람들과 잘 어울릴 줄 모르고 원리 원칙을 중시하며 입 바른 소리를 삼킬 줄 몰라 세상과 불화하는 인물 이수인, 그리고 평생 자신의 신념을 실천하며 살아온 노동운동가 구고신이라는 두 인물이다.
최 작가는 "입바른 소리를 삼키지 못하고 세상과 불화하는 이수인의 모습이 자신과 닮기도 했다"며 "나 같은 사람이 노조위원장을 한다는 점도 신기했고, 큰 싸움에서 자기를 지키며 헤쳐나가는 과정도 궁금했다"며 이수인 과장을 주인공으로 점찍은 이유를 설명했다.
이수인과 함께 또 다른 주인공인 노동운동가 구고신은 그가 만난 70년대 학번 사람들의 성격을 조합한 것이다. 하종강 교수에게서 영감을 얻었지만 그의 착한 얼굴은 작품과 어울리지 않아 여러 활동가들의 모습을 차용해 캐릭터를 구축했다.
<송곳> 줄거리는 단순한 선악 대결이 아니다. 회사가 악이고, 노동자가 선인 것도 아니고, 선하다고 다 훌륭한 사람도 아니다. 단지 타인을 위해 옳은 일을 죽도록 고생하며 하는 사람들이 주인공이다.
정권이 바뀐다고 해도 노동 문제는 그대로인 한 우리 삶은 달라지지 않을 텐데 대중문화에는 노동운동이라는 소재가 아예 없어 이를 그려냈다는 최규석 작가. 그의 바람처럼 <송곳>은 최근 영화화, 드라마화 계약까지 마쳐 노동문제를 대중문화에 녹여 알릴 수 있게 됐다.
'미생'의 뒤를 잇는 인기만화로 등극한 <송곳>은 현재 3부까지 연재된 분량이 3권의 책으로 묶여 나왔다. 총 5부로 내년 봄에 마무리될 이 만화는 이제 한 차례의 파업 만을 남겨놓고 있다.
/김상우 기자 theexodus@incheonilbo.com
/ 최규석 글·그림, 창비, 각 1만1000원(총 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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