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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할만한 시선/주목할 만한 시선, 책

<39> 희생의 시스템 후쿠시마 오키나와 / 돌베게

by TheExod 2015. 12. 28.



우리가 사용하는 전기는 어디서 생산되고 어떻게 올까?! 

사실 이 같은 고민을 해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우리가 사용하는 전기의 대부분이 누군가의 희생을 담보로 생산되고 유통되는 시스템 속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 역시 드문게 사실이다.

누군가의 이득과 편의를 위해 어느 한 쪽이 '희생'을 강요받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철학자이자 도쿄대 교수인 다카하시 데쓰야는 책 <희생의 시스템 후쿠시마, 오키나와>을 통해 국가 발전과 안보 등을 이유로 '희생의 시스템'을 강요하는 현실과 그 어두운 면을 비판한다.

그가 정의한 '희생의 시스템'은 다음과 같다.

희생의 시스템에서는 어떤 자(들)의 이익이 다른 것(들)의 생활(생명, 건강, 일상, 재산, 존엄, 희망 등)을 희생시켜서 산출되고 유지된다. 희생시키는 자의 이익은 희생당하는 것의 희생 없이는 산출되지 못하고 유지될 수도 없다. 이 희생은 통상 은폐돼 있거나 공동체(국가, 국민, 사회, 기업 등등)에 대한 '귀중한 희생'으로 미화되고 정당화된다.

책에서 저자는 일본 사회에 내재된 희생의 시스템을 선명하게 폭로하는 두 가지 키워드로 '후쿠시마'와 '오키나와'를 지목한다. 

'후쿠시마'는 대도시 인구의 편의를 위해 지어진 '원자력발전소'로 인한 '희생'을 대표하는 키워드로 지목됐다. 지난 2011년 3월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으로 일어난 원전 사고는 안전한 원자력을 강조하던 '안전신화'를 무참히 부서뜨렸다. 사회적으로 보이지 않거나 외면해왔던 '희생'이 이 사고로 명확하게 드러났지만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은 채 방치되고 있는 상황이다. 

또 다른 키워드인 오키나와는 주일 미군 전용시설(미군기지) 면적의 약 74%가 집중된 '희생의 시스템'의 피해를 받는 곳이다. 2차 대전 패전 이후로 일본의 국가 안보 축이었던 미·일 간 안보조약을 지탱해온 지역이지만 국가는 이곳에 지속적인 희생을 전가하고 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도 '희생의 시스템'은 존재하고 있다. 오히려 일본보다 더욱더 집요하게 희생을 강요하고 이를 정당화하는 곳이 대한민국이다. 

원자력발전소의 중요시스템을 비정규직과 같은 하청업체에 맡기고 발전시스템에서 가장 중요한 부품들을 인증도 받지 않는 부품으로 납품받는 등 각종 비리로 얼룩진 대한민국 원자력발전소, 각종 사고와 부실에도 경제적 논리로 '영구폐로'라는 길 대신 '수명연장'이라는 말도 안되는 대책을 내놓아 '후쿠시마'와 같은 시한폭탄을 껴안게 만든 중앙정부와 원자력안전위원회, 원전 생산 전력을 먼 도시까지 보내기 위한 송전탑, 안보를 위한 해군기지, 비용 문제로 안전한 작업환경을 제공하기보다 노동자의 지속적 죽음을 방치하는 기업 등 우리사회는 어쩌면 일본보다 더욱더 큰 '희생의 시스템'이 자리잡고 있을지 모른다. 

인천 역시 '희생의 시스템' 속에 놓여있다.

한국전력공사 등에 따르면 인천에는 서인천발전소 등 모두 9개의 화력발전소가 있고 이들 발전소의 전기 생산량 중 32.6%만 사용하고 나머지 67.4%를 서울·경기 등 수도권으로 보내고 있다. 이 같은 화력 발전으로 인한 대기오염과 송전선로 등 환경과 사회적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들어가고 있다. 수도권 시민들의 쓰레기를 매립하는 '수도권매립지' 역시 인천에 위치, 이에 따른 사회적 분쟁이 최근까지 계속되고 있지만 인천시장은 '매립종료' 대신 '사용연장'을 선택했다. 

위험이 따르는 이익에 대해 '향유자'와 '희생자'가 언제나 분리되는 사회. 공동체를 위해 '희생은 어쩔 수 없다'는 사실은 우리사회가 정상사회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셈이다.


/김상우 기자 theexod@gmail.com


다카하시 데쓰야 지음, 한승동 옮김, 돌베게, 1만1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