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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할만한 시선/주목할 만한 시선, 책

<40> 한국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 / 원더박스

by TheExod 2016. 3. 24.



헬조선과 수저 논란은 최근 대한민국을 살고 있는 청년들의 현실인식과 자괴감을 가장 쉽게 설명하는 단어로 떠올랐다.

IMF 이후 시작된 청년 취업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고 그나마 있는 일자리마저도 '노동시장 유연화'라는 말로 포장된 '비정규직'과 같은 악질 일자리로 넘쳐나고 있다. 불과 몇 년 사이 대한민국 청년들은 '정규직'인지 아닌지에 따라 계급이 나뉘기 시작했고, 결혼은 커녕 연애조차 제대로 생각하기 힘든 무차별적 경쟁사회로 내몰리고 있다.

여기에 더해 현 정권은 ‘노동개혁’이라는 그럴싸한 이름을 붙이고, 중소기업의 인력난을 이유로 비정규직 일자리를 확대하고 정규직 일자리를 축소할 것이 자명한 ‘파견법’의 통과를 밀어붙이고 있다.

현재 각종 사업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법 파견을 합법화시켜 비정규직을 더욱 확대시키겠다는 속셈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일제 강점기를 벗어나 50년도 안되는 짧은 기간동안 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두 성취했다던 자랑스런 한국현대사는 어쩌다가 청년들의 목을 조이는 경쟁사회,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한 인간미 없는 사회로 전락하게 됐을까?

기성세대들은 1970~80년대 산업화와 민주화의 성취로 '가장 편안하고 풍요롭던 1990년대'를 맞이했고 "개천에서 용난다"는 속설과 같은 계층이동이라는 희망을 품을 수 있었고 노력하면 자신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꿈을 실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외환위기로 인한 사회구조의 변화 등으로 인해 계층이동의 사다리는 끊겨버린지 오래다. 그 결과 대한민국은 부모세대가 잘 살아야 자식세대도 잘 살 수 있고, 부모세대가 가난하면 자식세대 역시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회로 전락해버렸다.

실제로 오늘날 대한민국은 청년들에게 미래를 포기하도록 만들고 있다. 청년실업률은 9.5%를 기록해 IMF사태 이후 16년만에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고, 청년 고용률(23.9%)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국가 중 최하위권인 반면, 장년층인 55~64세 고용률(63.2%)은 상위 7위로 OECD 평균(55.1%)보다 오히려 8퍼센트포인트 이상 높다. 기성세대에게 후하고 청년들에게 박한 구조는 한국 청년 세대를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삼포세대', 실업자와 신용불량자들로 가득한 '실신세대'로 만드는 주요 요인이다. "단군 이래 부모보다 못사는 세대의 첫 출현"이라는 장하준 교수의 지적이 점차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지난 1988년,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통해 일관된 진보적 관점으로 국내 문제와 국제 정세를 포함, 한국 현대사를 통사적으로 정리한 책으로 호평을 받았던 박세길 작가. 그가 지난해 출간한 책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민주화와 경제성장은 왜 보수정부와 삼포세대를 낳았나?>는 '한강의 기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던 대한민국에서 왜 청년의 미래가 불투명해졌으며, 연이은 보수세력의 집권으로 이어졌는지를 11가지 질문을 통해 묻고 있다.

작가는 3가지 주제를 큰 틀로 삼아 진보세력의 추락과 외환위기 이후 청년세대 고통이 어떻게 시작됐는지를 얘기하고, 민주화와 산업화의 경험, 이를 통한 교훈을 이야기하면서 마지막엔 청년들에게 앞으로의 대한민국의 희망을 얘기한다.

지난해 저자는 책 출간을 앞두고 '우리겨레하나되기 인천운동본부' 초청 강좌에서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에 대한 저작 작업은 민주화 물결로 격동한 1981년 대학에 입학한 이후 지금까지 30년간 한국의 대표적 진보 인사의 한 사람으로 생활한 본인에 대한 질문이자, 이 시대 청년들과 진솔하게 나누고 싶은 대화의 주제"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이태백 세대인 딸을 두고 있기도 한 저자는 오늘의 한국 현실을 만든 책임은 거의 전적으로 기성세대에 있다고 분명하게 단언했다.

이러한 저자의 고뇌는 에필로그에 자세히 서술돼 있다. 이전 시기까지 '자주, 민주, 통일'이라는 과제 하나만으로 한국 사회의 모든 모순 구조가 설명됐고 개인이 무엇을 해야 할지가 분명했다면, 사회주의가 붕괴되면서 미국 중심의 일극 체제가 들어선 뒤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진행된 21세기의 환경에서 과거에 대한 답습으로 진보 스스로 무너져가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한국 현대사는 역설과 극적인 반전으로 가득하다. 너무도 가난했기에 누구보다 빨리 부유한 나라를 이루었다. 극단적인 독재 치하에서 가장 역동적으로 민주주의를 성취한 나라가 됐고, 최근엔 급속도로 과거로 역행하고 있다.

저자는 오늘날 청년 세대가 겪는 극심한 고통이 또다시 극적인 반전의 계기가 되어 청년들의 활력으로 발전하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그려보며, 그 과정에서 청년들에게 시대의 고통을 떠넘긴 나를 포함한 기성세대의 비겁함과 어리석음을, 용서는 하되 결코 잊지 말기를 바란다는 바람을 전했다.


/김상우기자 theexod@gmail.com 


/박세길 지음, 원더박스, 320쪽, 1만5000원